Drawing 41
김한민
전시연극 <카페림보>
Kim Hanmin
Exhibit theater KAFE LIMBO
레지던시 기간: 2013.1.2-3.17
오프닝: 연극상영: 2.15/2.16/3.1 7:30pm
레지던시 장소: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동
사진/ⓒnoblian
드로잉에 관한 한 문장
드로잉은 포착을 위한 연극. 연극은 순간을 위한 드로잉.
김한민
1979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현재 직업은 ‘글그림 작가’로 주로 동물을 소재로 한 어린이 그림책과 다양한 주제 접근 및 형식 실험을 시도하는 그림소설(그래픽노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2004년 그리스 비극의 가면 제작사를 다룬 첫 만화 『유리피데스에게』, 그림책 『웅고와 분홍돌고래』를 쓰고 그렸으며, 동물학자인 형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동물 행동학 책 『Stop!』을 만들었다. 그 이후 <혜성을 닮은 방> 3부작, <공간의 요정>, <카페 림보>을 쓰고 그렸고, SF소설 <눈먼 시계공>과 시리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특별판 <거미여인의 키스>의 일러스트레이션를 맡았다.
또 계간 문화 잡지 <1/N>(엔분의 일) 편집장으로 일하며 ‘그래픽 노블 인터뷰’ 등 픽션이 가미된 실험적인 기사들을 기획하고, 문화공간 숨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한민은 데뷔작인 『유리피데스에게』부터 지금까지, 자연과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 다양한 동물 캐릭터를 창조해 이야기에 등장시켜왔다. 『혜성을 닮은 방』의 세계에서 사서 찬찬(펭귄), 식물 언어 통역사 앙리(게) 등이 자연스럽게 인간과 공존하고 소통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또, 어린 시절 스리랑카와 덴마크에서 살았고 대학 재학 중 자원봉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남미 페루의 사막 도시 치클라요에서 자동차 정비학교 교사로 활동했던 경험, 독일에서 떠돌이 작가로 체류하던 경험 등을 살려 책 속에 다양한 지역적, 문화적 색채를 불어넣고 있다.
현재는 한겨레신문 토요일판에서 매주 만평 ‘감수성전쟁’을 연재하고 있고, 이미지로 이야기하는 작업에 꾸준히 열중하고 있다.
전시연극 <카페림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림보족, 그들이 존재지키기를 위해 벌이는 바퀴족과의 대투쟁!
그래픽노블 <카페림보>가 전시연극(Exhibit theater)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생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철저히 잃어버린 6명 ‘림보족’들이 황폐함의 나라 제82국에서 벌이는 게릴라식 저항 과정을 다룬 그래픽 노블 <카페림보>(2012)를 원작으로 한 창작극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이태원동에서 최초 상연된다.
2012년 1월과 2월, 테이크아웃드로잉-이태원동은 ‘카페림보’가 된다. 작가 김한민은 극단장이 되고, 무대미술가 이수연은 큐레이터이자 공간연출자가 되며 카페 공간은 연극의 무대로 변신한다. 극장의 형식에 구애 받음 없이 자유스러운 연극 공간의 창출과 즉흥적 성격을 강조한 ‘환경연극’의 정신을 이어받아, ‘연극 카페림보’는 무대와 객석, 관람방식에 대한 고정된 틀을 깨고자 한다. 마치 작품들이 살아 움직이는 상상 속의 미술관에 온 것처럼, 관람객들은 도슨트의 안내를 받아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다가, 그 작품들이 스스로 연극을 벌이는 것을 접하게 되며 미리 고안된 몇몇 장치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연극의 한 부분에 동화되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전시 연극’이 이 특별한 연극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연극적 실험은, 카페의 일반 이용객들은 눈길을 끄는 전시물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전시장이자 연극무대로 변화한 공간을 평소보다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고 조금 더 새롭게 인지하게 되기를, 원작을 아는 독자의 경우는 책이 삼차원 공간에 구현되어 어느 순간 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2013/1/5 에 옮겨 적는 시
작전회의를 마치고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적과 함께
적의 적들과 함께
무한한 연습과 함께
– 김수영
1/14
카페림보를 축약해서 설명하는 시조
생계도 해결하지 못했지만
생존에 급급한건 못견뎌서
어딘가 소속되지 않고서도
살아갈 돌파구를 찾겠다고
전쟁을 선언하는 림보족들
겨울은 혹독하게 살을에고
거울을 찾으면서 상처입고
거만한 바퀴족이 던진돌에
전우가 한명두명 쓰러지고
투쟁은 속절없이 패배하네
나로서 존재하긴 글렀는가
마지막 선택지는 자살인가
무너져 내리려는 날붙들고
누군가 나의뺨을 후려친다
똑바로 마주보길 강요한다
A’table
A’table은 레지던시 작가를 이해하는 단서가 제공되는 테이블로서, 작가와 테이크아웃드로잉 멤버들과의 대화의 자리이다.
일시: 2013.01.15
장소: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동
참석자: 김한민(작가), 이수연(큐레이터), 삼성, 탄, 레이나, 최산호, 신유미, 올리브, 박자민, 최경진, 이혜승, 순대, 이태근, 전성우
김한민 여러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먼저 혜승씨가 총대를 메고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이혜승 된장남, 된장녀등의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들의 종류가 많잖아요. 그 사람들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었는데 카페 림보를 읽으면서 바퀴족이라고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바퀴중의 상바퀴인 것 같아요. 멤버들의 질문을 미리 받아보았는데, 공통된 질문들을 살펴보면 왜 34살일까, 굳이 바퀴일까, 까페라는 장소일까에 대해서 모두들 궁금해하고 있더라구요.
김한민 책을 읽어보면 분기점으로 34살이라는 나오는데요, 석가모니가 출가할 때 34살이었다네요.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는 결혼이나 진로 때문에 35살 이전에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고 그 다음부터는 내릴 수도, 휴게소도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제가 얼마 전까지 34살이었고, 사실은 자기 나이를 거울로 보는 거에요. 제 경험으로 한국사람으로서는 34살 근방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요. 그 후로는 어떻게 잘 살아갈지를 고민하지, 어떤 삶을 살아야지 라는 고민이 아니에요.
두 번째로 바퀴인 이유는,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는 살아 남을 거란 말이 있잖아요. 놀랐던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굉장히 잘사는 사람들도, 유독 우리나라만 심한 점이 있어요. 저는 제 나이치고는 여러 나라에서 살아본 편인데, 약간 성급한 일반화를 해보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강한 집착이 있어요. 사실은 꽤 잘사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제가 만나보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말들을 너무 쉽게 써요. 어릴 때 덴마크라는 나라에서 오래 살았었는데, “왜 다들 그렇게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지?” 라고 하면 다들 저를 욕하더라구요. 네가 잘사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제가 나중에 소위 못사는 나라라고 말하는 곳에서도 오랫동안 살아봤지만 전혀 아니었어요. 확실한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유가 없다는 거죠. 얼마 전에 레이나의 연결로 인터뷰를 하나 했는데 기자가 마지막에 묻더라고요. “작가님, 밥벌이는 어떻게 하세요?” 그 때는 제가 대충 둘러대고 끝냈어요. 분명 궁금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경제적인 환원주의가 있는 것 같아요. 경제적인 환원주의가 뭐냐하면 말이에요. 연극을 진행하면서 연극 배우들 식비만 해도 적지 않은 금액인데요. 그러면 제 사비를 들여서 진행하게 되는데, 표를 파는 것도 아닌 이 일들을 도대체 왜 하냐고 누군가 물어보겠죠. 설명할 수 없어요. 이 연극을 보러 수백 명이 올까요? 이 연극을 통해서 카페 림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까요? 아니에요. 이걸 왜 하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가 없어요. 환원이 안 되는 것들이 있거든요. 돈이 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꼭 물어봐요. 그럴 때 제가 저희 부모님이 잘 살아요 등의 대답을 하면 이 상황이 이해가 되는 건가요? 그 지점이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스 조각을 연구하는 민켈만이라는 사람이 굉장히 부유하게 살았는데, 옆에선 집안이 잘사니까 저런 공부를 하겠지라고 말해요. 집이 정말 부유하더라도 안 하는 사람 천지다, 99명은 집이 잘 살아도 그런 일 안한다고요. 이 사람의 환원주의는 뭐냐하면 잘사니까 이런 일을 한다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못살아도 하고 싶은 일은 충분히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들을 생존과 관련하여 생존 하려는 근성이 저는 바퀴와 너무 잘 맞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바퀴랑 코알라를 비교를 해보자구요. 바퀴는 굉장히 저열하고 코알라를 고귀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생물학적으로도, 어떤 방법으로도요. 하지만 우리가 이 둘 중에선 확실히 코알라를 좋아하는 게 사실인 것 같아요. 이 대답을 보면, 코알라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나요? 코알라를 현실적으로 들여다보면 굉장히 냄새가 나요. 똥도 많이 싸고. 코알라를 실용적인 관점이 아니라 귀엽고 아름다운 미학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는 거죠. 코알라는 유칼립투스만 먹고 살지만, 바퀴는 A가 없으면 B를 먹고 B가 없을 땐 C를 먹고 잘 번식한다는 거죠.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는다는 거죠. 한국 경제는 7,8위가 되어가고, 한국 사람들은 잘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피해자 코스프레를 입고 우린 너무 힘들어, 우린 선진국에 진입해야돼 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미 선국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지금 남은 것은 머릿속의 생각을 바꾸는 것 말고는 남은 게 없는데, 못사니까 남을 돕지 못해 못사니까 책 볼 시간도 없어라고 말해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제 속에 상처를 입은 거에요. 제 삶은 이런 모습들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그들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보게끔 하는 것이에요. 그들을 인정해, 그들도 그들의 삶이 있다고 윤리적으로 생각은 해요. 하지만 지금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들을 일반화, 대상화 해버리고 바퀴족이라는 폭력적인 말을 붙여야 제가 굉장히 시원한 거에요. 그게 전쟁인 거에요. 남을 적군과 아군으로 나누는 것. 이 책은 굉장히 전략적인 책이에요. 윤리가 담겨져 있지는 않지만, 싸움을 거는 책이고 그렇기 때문에 바퀴족과 림보족으로 확실히 나누고 싸움을 거는 것이죠.
이혜승 책 내용 중에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거울’이라는 소재가 나오잖아요. 거울은 사람일수도 있고, 어떤 사건일수도, 공간일수도 있고요. 작가님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것들이 거울의 역할을 했었는지 궁금했어요.
김한민 떠오르는 사람이 3,4명이 있는데 그 중의 반은 헤어진 여자친구였던 것 같고요. 거울이 깨지면서 저도 깨지고. 책 속에 사람을 붙들고 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거울을 붙들고 소통을 시도하다가 거울이 깨지는 장면이에요. 정면으로 마주보고 눈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말을 시도하는 거에요. 그 대화를 피하지 않고요. 그러다 보면 당연히 어느 한 쪽의 사람이 힘들어지기 시작해요. 그래도 그것을 놓지 않고 계속 끝까지 가보는 것. 이 경험을 아무랑 할 수는 없잖아요.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하겠죠? 그러다가 깨지면 파편이 된다고 얘기했는데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어요. 그 후에 알 수 있는 점은 림보족이 되는 여정에는 2가지가 있다는 거에요. 자기가 무엇이 아닌지를 아는 것과 무엇일 수 있는지 아는 것. 가장 많이 알게 된 건 이건 아니구나, 이 삶은 내게 맞지 않는 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저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것을 알았다면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내가 무엇이 아닌지는 알아요. 내가 취직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국에서만 평생 살 수 없다는 것을, 명품을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것은 알아요. 그리고 내가 그림을 빼고 살 수는 없어요. 그림과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아요. 다른 것 없이는 심지어 음악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책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뭐가 아닌지를 알아가며 거울을 보는데, 말해줘 어떻게 싸워야하는지 계속 말해줘라고 나와요. 백설공주의 거울아 거울아 말해줘처럼 거울한테 항상 물어보는 거에요. 대답해주지 않아도 메아리를 통해서 얻는 게 있는 것이죠. 즉답이 아니더라도요. 대화가 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답은 이거야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대화를 통해서 내가 느끼는 것이 있고, 오고 가는 것들이 있는 것이죠. 그런 대상이 거울이고 모두의 인생에는 거울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거울을 너무 배려해서 이야기하고 다가가기를 꺼려해요. 내가 상처줄까봐 또 받을까봐 말이에요. 꺼리다보면 깨지지도 않고 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라지겠죠.
전성우 책 속에서 시인만이 거울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나오는데, 왜 꼭 굳이 시인만이 볼 수 있다고 얘기하는지 궁금해요.
김한민 여기서 말하는 시인이라는 말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시인이 결코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성우씨 같은 사람인데 시를 쓰는 사람, 아까 얘기한 것처럼 환원할 수 없는 것. 얼마 전 김지하 시인이 옛날에 냈던 책이 불법 금지서적이 됐었다가 풀리면서, 법원 판결을 받는 중에 했던 발언이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 애들 학비나 되게 돈을 어쩌고 저쩌고 얘길 했었는데 많이 실망스러웠어요. 그 말을 오해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지점들이 항상 있어요. 우리가 시에게 기대하는 것은 시인은 꼭 돈이랑 관련이 없어야 된다는 아니에요. 편견을 가지면 안되는데 저도 잡지를 해보면서, 시인에게서 계좌번호를 받을 때가 있어요. 그게 왜 달라야 하죠? 사람은 똑같잖아요. 중요한 것은 우리 세상의 한 부분이라도 돈으로만 환원이 안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우리에게는 유일하게 상식적으로 남아있는 생각은 남녀 사이의 연애 감정,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심지어 이것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더라구요. 하지만 이 부분은 생존이랑 연결되어 환원이 될 수 있어요. 자손 번식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하고요. 시야말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짝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성우씨는 사람들이 시를 왜 쓰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요?
전성우 그 순간을 정지하고 싶어서, 동물학자들이 멸종한 동물들을 남기고 싶어서 박제하는 것처럼요.
김한민 그것을 왜 박제하고 싶은 거죠?
전성우 무의미한 것들 중에서 가끔가다 만나게 되는 감동의 순간들이 있잖아요. 시간은 흘러가버리니까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요. 나중에라도 들여다보면 그 때의 생각이 나고.
김한민 왜 그것을 하는 거죠?
전성우 그러니까.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지만 제 행복의 한 가지라고 생각해요.
김한민 왜 그 행복을 추구하죠?
전성우 그냥.뭐..
김한민 나왔죠. ‘그냥’이 나오잖아요. 짜고 하는거 아니에요.(하하) 여기 나오는 것이 그냥 존재하고 싶은 거에요. 굉장히 솔직한 점이 다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지만, 시인이라서 써야죠, 출판사에서 재촉하니까 써야죠 이런 얘기들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에요. 그 다음부터는 거짓말인 거죠. 책 속에서 얘기하는 것도 그냥 존재하고 싶은 것인데 이 부분의 대표적인 모습이 시라고 생각해요. 책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시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고 직접 쓰기도 하고 시 기계 같은 것도 나오고요. 올리브 책의 마지막에 더듬이로 나오는 소년이 혼자 남잖아요. 그 소년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해요.
김한민 소년은 모델이 여기 있는 성우씨에요. 카페 림보를 시작하기 전에 우연히 만나 함께 작업도 했었던 친구에요. 아주 정확한 배경 캐릭터가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더듬이 친구만 별다른 설명이 나오지 않아요. 딱 잡지 하나 보고 왔다는 것 말고는. 그것에 비하면 저는 성우씨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더듬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한 이유는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어쩌면 책이 너무 잘되어서 2편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하하하. 열어놓은 결말이구요. 두 번째는 책을 보면 내레이션이 2가지의 갈래로 나뉘어지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거에요. 하나는 잠언 풍의 몇 다시 몇의 형식이고, 페이지 아래쪽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내레이션을 쓰는 게 더듬이에요. 더듬이는 계속해서 노트북 앞에서 기록하고 있어요. 저는 불교는 아니지만 불교철학에 관심이 많은데, 여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나는 들었다. 성경에도 나와있죠. 많은 제자들이 들었다. 들은 것들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지 예수나 부처가 직접 적지는 않았잖아요. 더듬이는 대사 한 마디 없이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기록하고, 자기 감정을 하나도 섞지 않고 배운 대로 따귀 한대로 실천하죠. 나중에 더듬이가이 퍼트리지 않을까. 얘 말고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아직 고민이 무르익지도 않았고, 시간이 더 필요하고 가능성도 충분하고. 얘가 마지막에 남는 애로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페 림보2가 이 캐릭터로 시작이 되어서 이야기를 이어가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최산호 제가 의미부여를 한 것일지도 모르는데요, 소년의 마지막 장면에 모자의 귀가 열리더라구요. 무슨 의미인가요?
김한민 굉장히 친하게 지내고 싶네요. (하하) 굉장히 정확히 보셨는데, 이 인물은 실내에 들어가면 모자의 귀가 올라가요. 이 모습을 어떻게 해석을 하셨는지요?
최산호 두 번째 책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도 아까 했었구요, 얘는 뭔가 있는데, 나중에 얘가 변하게 되나? 라고도 생각을 했었어요.
김한민 굉장히 의문의 캐릭터라는 것은 분명하고.
최산호 마지막에 닫힌 것들이 열리는 느낌이라서. 좋은 이유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한민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네요.
최산호 그러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인가요?
김한민 그것은 아니에요. 참 재미있네요. 다른 분들은?
최산호 제 질문의 답은 안해주시나요? (하하하)
이태근 외국물 주사에 대해서 설명 해주세요. 외국물 주사의 어떤 면이 작가가 바라보는 긍정적인 모습이고 어떤 면이 부정적인 면인가요?
김한민 흔히들 유학을 다녀오거나 하는 모습들이겠죠. 그것들에 어느 정도 반감이 있고, 두 번째는 외국에 대해서 막연한 환상이 있다는 것도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피부로 겪고 왔고, 외국도 충분히 열악하죠. 책에 나오는 44국은 독일을 가리켜요. 제가 잠시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옛날처럼 뉴욕에 가서 접시 닦이부터 하고, 파리에 가서 택시 운전기사를 하는 시절이 아니에요. 맨땅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해보겠다는 지금 이 시대와는 맞지 않아요. 현실은 서류상으로 명확하지 않으면 남아있을 수가 없어요. 굉장히 삭막해진 시대인 것은 분명하고요. 외국물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에는 제 경험도 들어가 있어요. 제가 외국에 나간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는데, 가장 최근 독일에 갔었을 때에 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이것이었어요. 지금 여기서 뭐해? 당연한 질문이지만 아까 시를 왜 쓰냐처럼 대답을 많이 못했어요. 한 2개월은 독일어를 배웠지만, 그 다음은 그냥 떠돌이로 살았어요. 제가 살 수 있는 만큼은요. 사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림 그리고 가끔 친구들 만나고, 파티에 초대되면 가고, 구경하고, 전시도 같이 하고. 그렇다고 작가로서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굉장히 애매한 일들이죠. 이것들이 모두 허용이 안 되는 곳이 외국이에요. 한국에서는 적어도 내 나라에서는 내가 직업이 불분명하더라도 쫓겨나진 않잖아요. 하지만 외국은 일정한 시간이 되면 부르잖아요. 이 나라에 들어온 아주 명확한 목적을 요구해요. 갑갑할 정도로 세밀하게 대답을 해야 하고 뒷받침 되는 금액의 돈이 통장에 항상 들어있어야 하고 근 2년 동안의 거래내역에도 지속적으로 일정한 금액의 입금 내역이 엄청나게 잘 증명이 되어야 해요. 외국에 아무 준비 없이 나갈 수는 없는 일이죠. 그래서 책 속의 뒤통수라는 인물이 그것들을 챙겨주겠다고 얘기를 했어요. 사실 비행기표만 두고 사라졌지만 말이에요. 외국물 주사를 맞는다는 것은 뭐냐 하면, 목적이 있어서 외국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그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언어를 습득하고. 하지만 이민국에 가서 이렇게 얘기했다가는 당장 꺼지라고 얘기 하겠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실용적인 이유가 아니에요, 산티아고 가는 길처럼 정형화된 답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가면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더라 라고 얘기하지만 전 그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요. 자기가 방황할 때 그 길이 자신만의 산티아고 길이 되는 것이지, 남들이 간다고 따라 나서는 길이 내 것이 될 수는 없죠. 저는 그것들에 신뢰를 할 수 없어요. 그게 여행이든 유학이든 떠돌이든 망명이든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지만, 정형화 된, 남들이 밟은 길을 나도 한 번 밟아보는. 내가 진짜로 외국에 있다는 느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도전하는 것. 이것들은 상당히 오래가고, 내가 생각하는 외국물 주사에요. 그렇다고 영영 가지는 않지만요. 림보족에게 외국물 주사라는 것은 굉장히 절대적인 것이에요. 아까 기자가 돈벌이를 물어봤다고 얘기했었는데 저는 일상 생활에서의 돈벌이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뭐 어떻게든 벌면 되는 것이니까요. 얼마 전 지하철에서 봤는데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적게 필요한 사람이다라고 적혀있던 걸요. 저는 외국물 주사를 위해 돈을 좀 모아야 해요. 외국물 주사가 얼마나 중요한 지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제가 가장 인생이 많이 바뀐 시점은 남미를 다녀온 후에요. 남미에서는 어떻게 살고 있다를 책으로 보고 TV에서만 보고서는 다른 것이죠. 내가 직접 그 곳에 가서 호황, 훌리오라는 친구가 생기고 그들의 삶에 완전히 들어가보고요. 내가 조금 힘들어라고 얘기할 때 누군가가 아프리카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넌 밥 잘 먹잖아 라고 하는 것은 제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훌리오도 지금 힘들잖아라고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죠. 그러면 나는 불평을 잠글 수가 있어요. 내 불평이 녹아요. 그 만큼 외국물 주사를 맞는다는 것은 내가 견문을 넓히고, 어느 미술관에 가봤고라고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서 내 삶의 위치를 잡아보는 거에요. 40억 중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에요. 이것을 아는 게 나에겐 굉장히 중요했어요. 연봉이 어떻고 한 얘기에서 빠져나와서 40억 인구 중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외국물 주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생각이 굉장히 말랑말랑해져요. 그렇지만 외국물 주사의 부작용이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부작용 주의라고 붙여놔야 할 거에요.
신유미 카페라는 공간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라는 매개체가 나오잖아요. 마지막에 통수가 떠난 후 그가 남긴 커피를 사향고양이가 찾는 장면도 있던데, 카페와 커피의 등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김한민 카페는 제게 있어서 가능성의 공간이었어요. 유일하게 돈을 내고 공간을 잠깐 쓸 수 있는 곳이잖아요. 다른 곳은 옷을 산다든지의 목적이 있어야 해요. 카페는 자유로운 공간이잖아요. 하지만 현실의 카페들은 책의 표지에서 보이는 바퀴베네의 모습과 같아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공간이 바퀴베네에요. 우연하게도 제가 좋아하는 공간이 철거된 후에는 꼭 바퀴베네가 생기다라구요. 제가 꿈꾸던 카페공간은 마치 살롱과도 같은 공간이에요. 옛날 파리의 낭만주의 작가들이 많이 있었던 플로어 같은 공간이요. 대단한 철학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마치 아지트처럼, 예를 들어 거기에 혜승씨가 있는 거에요. 그러면 지나치다가 만남이 있어요. 만남. 우리의 카페도 만남이 있는 것처럼 보이죠? 실은 없어요. 이미 만난 상태에서 까페에 들어가자는 있지만 여기서 제가 말하는 만남은 스쳐지나가면서 교차되는 공간이에요. 현실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무공간에 지나지 않아요. 사무공간의 노마드화. 브뢰벨 음악처럼 한 명 두 명 쌓이고 이야기가 지어지는 느낌이 전혀 아니라는 거에요. 현실의 카페 특히 바퀴베네는 익명 보장 혹은 반복되는 수다가 있는 그저 그런 공간이지 만남이 있는 공간이 아니에요. 저한테는 가장 만남이 있어야 될 공간에 만남이 없는 곳이 되어버린 거죠. 카페림보의 카페가 C가 아니라 K로 시작하는 이유는 마치 Korea, Corea처럼 K로 써도 되고, C로 써도 되는 거죠. 철자는 달라지지만 의미가 달라지지 않아요. 카페 림보라는 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들어서자마자 앉아서 맥북을 켜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그런 카페가 아닌 거에요. 책에서도 보면 얘네들만 혼자 딴 짓을 하고 있잖아요. 다른 바퀴들은 각자 개인적인 일들을 하고 있는데 얘네들은 서로 함께 고통을 겪고 있고, 뭔가를 하고 있어요. 이런 모습들이 현실에서 아예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극소수이죠. 어떤 진지의 대화의 공간이 열린다, 열리는 곳, 그곳에 카페 림보인 것이에요. 카페 림보는 특정한 장소에만 있는 곳이 아니라 바퀴베네 안에서도 그 대화의 공간이 열렸을 때 그 상태가 카페 림보라고 볼 수 있죠. 공간이 아니라 상태인 것이에요. 커피라는 것의 진짜 의미, 각성의 의미. 저는 그 시대의 가장 잘 나가는 스타가 나와서 아침에는 베이글을 먹고 커피를 마셔야한다고 광고하는 모습이 싫어요. 뉴요커라는 어떤 스타일을 그냥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커피의 원산지는 남미잖아요. 남미의 커피농장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커피라는 의미는 되게 다르더라구요. 커피농장의 백년 동안의 고독, 이 이야기를 하면 너무 길어지는데, 나중에 시간이 되면 얘기해드릴게요. 본질의 의미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책을 보면 6명이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나눠먹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리필도 안되고, 쫓겨나고요. 이건 굉장히 대단한 것이에요. 카페라는 물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겠죠.
신유미 그래서 마지막에 통수가 커피를 남기고 가는 건가요?
김한민 원래는 커피를 타주는 것까지 나오지만, 편집 됐네요.
이혜승 레이나가 주신 질문 중의 하나인데요, 동물을 사랑하는 일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보다 귀한 일이라는 문구가 나오더라구요. 사향고양이를 포함한 동물들이 가지는 의미가 궁금해요.
김한민 그 이야기는 꼭 하고 싶었는데 질문해줘서 고마워요. 책에 나오는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비싸다고 말하는 루왁커피에요. 우연하게 생긴 거잖아요. 씨벳 커피라고도 하는데 사향고양이가 먹고 똥 싼 것을 원주민들이 아까워서 커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최고급 커피가 되어버렸죠. 씨를 먹고 똥을 싸고의 원리는 은유 되어서 책 속에도 들어있어요. 인간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에 대한 너무 많은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구현해내지 못했을 때 실망해버리는 것이 림보족인 것이에요. 그래서 쉽게 인간 혐오에 빠질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인간을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고 너무 많은 기대를 걸기 때문에요. 인간은 원래 그래, 라고 생각했으면 편할텐데 말이에요. 애정의 총량은 가슴 속에 있지만 자기보다 더 약하거나 자유가 없는 존재한테로 쏠려요. 현실에서는 바로 동물이죠. 모든 인간이 힘들다고 얘기하지만 동물만큼 인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존재는 없을 거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는데, 왜 좋아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런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실망인거죠. 인간 경멸, 동물 애호 이 모습은 굉장히 안 좋은 거거든요. 그렇지만 이 모습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히 책에 삼겹살 집이 나오는데, 저는 8,90% 채식주의자이긴 하지만, 아예 채식만 하지는 않아요. 고기가 나오면 먹죠. 그렇지만 중요한 건 채식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육식은 할 수 있죠 당연히. 치킨 집인데 닭이 엄지손가락을 들고 있는 모습, 삼겹살 집에서 돼지가 나를 먹어, 나 진짜 맛있어라고 하는 모습. 이 모습들은 너무 아닌 것이죠. 우리가 얼만큼 비인간화되고 무뎌졌는지. 정말 끔찍한 모습이에요. 생명에 대한 일말의 고마움이 없는 거죠. 그 어떤 장면보다도 슬픈 장면인지. 책 속에 보면 우리가 흔히 보는 횟집 앞에서 우는 장면이 나오죠. 제가 맨날 지나는 횟집 앞에서 저의 모습인데요. 회는 당연히 먹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저렇게 눈앞에 먹을 것들을 펼쳐놓고 고르는 모습 말이에요. 누군가는 그러더라고요. 뒤에서 그러는 모습보다는 저게 더 솔직한 모습이 아니냐.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 종만 사랑하는 모습이 바퀴스럽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삼성 도시 공간에서도 좋아하는 공간들이 바퀴베네처럼 변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좋지 않잖아요. 공간도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들이 림보족인 줄 알았는데 바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김한민 책에서 보면 림보족들이 이 싸움을 포기하고 중도하차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포기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겠죠. 특히 사람의 경우에는.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책이 있는데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란 책이에요. 그 책을 쓴 바우만이라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때. 사람도 공간이죠. 봄여름가을겨울 사람은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변하는 것은 좋죠. 좋지만, 돌이킬 수 없게 변해버리는, 감수성을 잃어버린 상태. 공간에 대한 감수성. 뭔가가 없어졌을 때 눈물도 글썽거리지 않고 괜찮은 상태. 그냥 일상 사람에게 일어나면 괜찮지만, 내 거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런 말을 했을 때. 책에서는 화살이 꽂히는 장면처럼 직설적으로 표현했지만 결론은 상처를 입는 거죠. 왜 상처를 입냐하면 나 혼자라는 느낌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에요. 유명한 독서가인 로자가 석사인가 박사 논문이 그거였어요. 어떻게 상처가 신경증이 되는가. 노스텔지아라는 단편에서 나온 내용인데 어떤 사람이 아들이 죽어 상실감이 있어요. 그 소설에서 그 남자는 자신의 상실감을 어떤 강아지에게 말하고 있어요. 상실감이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 때, 이 공간도 언제까지 있을 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이 세상은 예측불가이기 때문에요. 사랑하는 공간이 없어졌단 말이에요. 순대씨와 이 공간에 대해 기억을 공감할 수 있고, 최소한 술 한잔 하며 오늘 이 공간을 떠나보내자 울먹울먹 할 수 있으면 상실감이 애도로 표현이 되는 거죠. 상실감을 공유할 사람이 없을 때, 제가 이 없어진 공간에 대해 말했을 때 옆에서 카페베네 좋네, 깨끗하고 사람 많고 좋네, 라고 이야기해버리면 갑자기 벽이 생기면서 내 상실감이 애도가 아니라 신경증, 곧 병이 되는 거에요. 지금의 문제는 뭐냐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비극들은 당연히 있죠. 하지만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 적다는 것. 마지막엔 내가 바뀌어야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살아야 하니까. 나도 내 마음속의 감수성을 없애버려야 그나마 살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면서 감수성 전쟁에 투항을 하는 거에요. 나 저쪽 편에 갈래, 이렇게 살기에는 나 너무 힘들어. 이 점에 대해서는 우화 같은 ‘공간의 요정’이라고 또 다른 책을 썼어요. 언젠가 이 책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네요. 자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정도만 더 받아볼까요?
전성우 (손 번쩍)
김한민 두 개 (질문)했잖아요. (하하) 성우씨는 키핑 해놓고, 아직 얘기하지 않은 분들이 질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순대 바퀴족에 대한 묘사가 어떤 판단도 안 들어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 사람들을 조롱하고 싫어하고 멍청하게 표현한 모습들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왜 이렇게까지 표현을 했을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저도 찔리는 모습들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책을 덮으면서 느낀 생각은 바퀴족이 림보족이 될 방법은 없나?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작가님은 바퀴족에 대한 애정이라던지 연민이 없으시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김한민 이런 것 같아요. 바퀴족한테 연민이 있다 하더라도 저는 철저하게 감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도 불과 몇 십년 전에는 식민지였잖아요. 그것은 마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일본에 연민을 가져야한다는 것과 똑같아요. 지금 현재 바퀴족이 숫자적으로 얼마나 지배적인지는 몰라도, 1:99의 상황에서 완전히 손해보고, 모든 것이 붙잡혀있는 99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1한테 연민을 가져야 되나요? 지금 여기는 바퀴족이 점령했어요. 정확히 얘기할 수 있어요. 2013년의 한국에는 천지에 바퀴족이에요. 나도 바퀴네라고 찔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이미 바퀴가 아니에요. 일단 바퀴는 이 책을 보지도 않아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면 볼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죠. 제가 예전에 한 번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요, 다들 6호선 많이 타고들 다니시죠. 제가 계산을 해봤어요. 6호선 한 열차안에 몇 명이 타느냐, 6~8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한 열차에 몇 명이 타느냐, 한 호선에는 몇 개의 열차가 있을까 알아보고 계산해보니 카페 림보를 읽을 수도 있었을 사람은 6호선 전체의 1,2명인가 그래요. 읽고서 고민을 하면서 떨어져 나가겠죠. 지하철 노선 전체에 2,3명 있겠죠. 그 극소수가 나머지 4천만명에게 연민을 느껴야 하나요? 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내 존재조차 모르는데.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내가 왜 연민을 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거에요. 여기서는 림보족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얘네 너무 폭력적인거 아니야, 남의 삶을 이렇게 말해도 괜찮아? 라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이것을 바퀴족의 시점에서 본다면 책 속의 이 장면에서는 림보족은 그려져있는 크기가 아니라 바닥에 떨어져있는 담배꽁초만도 못해요. 보이질 않아요. 담배꽁초가 이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낄 필요는 전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얘네가 좀 더 강해지고 다부져야할 필요가 있겠죠. 순대 림보족은 감수성이라는 것을 가졌잖아요. 그런 면에서 조금 더 가지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바퀴족이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 있어서 연민을 느끼지 않으시는지요?
김한민 책에 나와있지만 바퀴족에게도 고민은 있어요. 바퀴족이라고 다 행복한 건 아니에요. 뭔가를 보고 계속 찾아가겠죠. 불과 몇 주, 몇 달전만 해도 무한도전, 1박 2일 이런 프로그램들은 정말 대세였어요. 안보는 사람이 없었고, 유재석은 누구나 좋아하구요. 전 얘기했어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유재석이라고요. 심지어는 바퀴족 테스트에도 나와요. 모르고 지나가는 분들도 많은데 여길 보면 한비야, 강호동, 유재석, 한고은, 이명박, 김대중이에요. 이명박은 빼겠지만 제일 유명하고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하고 멘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근데 저는 특히 이중에서도 한비야를 제일 앞으로 내세웠는데, 한비야 얘기를 하자면 엄청난 논쟁이 시작될 수도 있어요. 왜 이 모습들을 바퀴족으로 나누어 보느냐라고 생각했을 때 이 사람에 대해서 존경은 없느냐. 전쟁으로 치고 전세를 볼 때, 제 눈으로 보는 전세는 달라요. 억울한 점이 있었어요. 가수 싸이가 한창 떠올랐을 때 일이에요. 심지어 조선일보까지 싸이에 대해 세계 최고의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었어요. 그 때 이화여대 대학원생이 싸이를 고소하려고 했던 사건이 있었는데요. 싸이가 서울시 광장에서 콘서트를 해줬어요. 8천~1만명 가까이 되는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었는데요. 이 여대생이 고소를 한 이유는 그 때 당시 서울시 하이페스티벌이라고 해서 작가들의 계획을 모두 취소해버린거죠. 이것은 예술가들의 인권 침해라고 고소를 하겠다고 얘기했어요. 전혀 모르지만 저는 그 이화 여대 대학원생의 편이었어요. 제가 이 사건을 보면서 놀랬던 점은 저는 그 여자아이의 블로그가 초토화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봤어요. 정말 수백명이 천개가 넘는 댓글로 온갖 욕설로 국위선양을 하는 싸이에게, 심지어 이렇게 바쁜 와중에 우리에게 일부로 무료로 공연까지 해주는데 너 같은 사람이 왜 그러냐, 관심병자냐, 미쳤나 심지어 이화여대에 대한 욕까지 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속으로 정말 노예근성 쩐다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싸이가 공연해주면 그렇게 황공한가. 그 때 싸이는 완전한 대세였어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싸이가 얼마나 좋은 마음으로 이 공연을 해줬는지, 돈도 안받았다더라 였어요. 모든 마음이 싸이에게 다 가있는 거에요. 제가 한 번 강호동이나 한비야를 비판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그 사람들에게 가 있어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큰 권력인지를 깨닫지 못해요. 많은 관심을 받고 그 관심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지.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마냥 행복한 건 아니에요. 분명 고민이 있고 힘든 점이 있겠죠. 감수성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그 전세를 파악하는 것이에요. 누가 진정한 소수처럼 보이고 누가 진정한 약자처럼 보이는지를 아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저는 싸움을 걸어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전쟁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착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착한 사람이 되려면 간디처럼 비폭력 전쟁을 해야겠죠. 얘네가 한 일들은 겨우 참새 하나 살린 것 말고는 없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가장 소심한 전쟁을 하는 건데, 말은 엄청나게 쎄게 하고.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전쟁 인거죠. 우리가 이 모습보다 더 용기가 있나요?
전성우 카페 림보가 책으로 나왔는데 연극으로까지 굳이 하시는 이유가.. 혹시 노리는 게 있나요?
김한민 굳이.(하하) 제가 제일 처음에 얘기한 것 같은데요. 노리는 것은 없어요. 유일하게 노리는 것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커피를…(하하)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시가 떠오르면 쓰고 싶잖아요. 연극이 떠오르면 하고 싶은 거고. 그것을 잘 모르겠어요. (이수연씨를 보며) 어떻게 생각해요? 이게 떠오르면 만들고 싶죠. 심지어 손해를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수연 네..전..네..(하하)
삼성 이게 림보족의 문제야.
김한민 네, 굉장히 큰 문제고, 무언가가 떠올라도 한 번 시를 쓰지 말아보세요. 어떻게 되나.
전성우 그렇게는 못하죠.
김한민 그쵸. 답을 가지고 계시네요.
사진/ⓒpark jungin
전시연극 <카페림보> Exhibit theater KAFE LIMBO
연극상영: 2.15/2.16/3.1 7:30pm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동
사진/ⓒgorilrock
*크레딧
cast <머리>유제윤, <손>최솔구, <혀>한주원, <발>박한결, <배>박상현, <더듬이>전성우, <바퀴족>김자한, 박혜지, 정창윤
staff <원작>김한민, <연출>김자한, <미술>이수연, <영상>김도형, <오브제>서공희, <조명>장효연, <도큐멘트>김종민